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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봉사 현오국사탑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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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오국사탑비와 보호각
현오국사탑비와 보호각
서봉사지 명문 기와 막새(사진 : 용인시)
서봉사지 명문 기와 막새(사진 : 용인시)
고려 명종 연간의 고승 현오국사의 탑비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〈현오국사탑비〉는 광교산 동쪽 서봉사지에 있습니다. 서봉사가 언제 지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남 아있는 절터의 규모를 보면 아주 큰 절로 추정됩니다. 전하는 말에 의하 면, 임진왜란 때 절에서 나온 쌀뜨물 이 개울을 따라 10리나 흘러내려가, 왜군이 물을 따라 올라가서 절을 불태웠다고 합니다. 이곳이 서봉사의 옛터임이 밝혀진 것은, <현오국사탑비>를 보호하 기 위한 비각을 세우는 공사를 하던 도중에 기록이 남아있는 기와조각 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.

명종 15년(1185)에 세워진 이 탑비는 현오국사(玄悟國師)의 행적을 후 대에 알리고자 만들어졌습니다. 보통 스님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탑비 는 사리를 모신 부도탑과 함께 건립되는데, 서봉사지에는 부도의 흔적 은 아직 확인 되지 않았고 이 비석만 남아 있습니다. 비석의 형태는 화 강암으로 된 받침 위에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몸돌이 놓인 단출한 모습 입니다. 비 받침 부분의 윗면은 네 귀퉁이를 비스듬히 잘라내었고, 비문 이 새겨지는 비 몸에도 윗부분의 양귀 끝을 사선으로 접듯이 잘라서 마 무리하였습니다. 비 몸의 높이는 1.8m, 너비는 0.97m입니다. 비문에는 글을 지은 이와 건립연대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, 본문을 쓴 사람은 이지명(李知命, 고려 명종 대의 문신)이며, 글씨를 쓴 사람은 초서 로 이름을 날렸던 유공권(柳公權)입니다.
채제공 선생 뇌문비각(사진 : 문화재청)
채제공 선생 뇌문비각(사진 : 문화재청)
비문에 의하면 현오국사는 고려 중기의 승려로 세속의 성은 왕씨 (王氏)였으며, 속명은 종린(宗璘)이었습니다. 15세에 불일사(佛日寺)에 서 승려가 된 후, 부석사(浮石寺)의 주지를 거쳐 명종 8년(1178) 53세 의 나이로 입적하였습니다. 명종은 크게 슬퍼하며 그를 국사(國師)로 삼 고, ‘현오(玄悟)’라는 시호를 내린 뒤 동림산 기슭에서 다비(화장)하였다 고 합니다. 현오국사는 대각국사 여풍의 권위를 계승한 대표적인 고승 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.

현오국사탑비로 가려면 신봉교에서 우회전하여 신봉1로를 따라 570m 이동 후 신봉1로439번길을 따라 80m 가량 이동한 다음, 서봉사 안내판 출발점에서 걸어 올라가면 됩니다.